다양성 그 것이야 말로 생물이 존재하는 가치가 아닐까?
글쓴이는 그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다양성을 포기하고 성장을 거부하는 종은 멸종의 길을 걷는다.
아무리 번창하고 아무리 날뛰어도 이 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고통은 생물의 다양성을 낳는데 매우 효과적이고 편리한 수단이다.
고통이란게 단순한 신체적 고통만을 말하지 않는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라고도 부르는 비육체적 고통으로도 자극제가 되어 다양성을 촉진할 수 있다.
환경적으로 공룡의 시간이던 중생대 이전에 비해 현대는 대단히 살기 나쁜 환경이다.
산소농도가 내려갔고 기온이 내려가 살아남기 힘든 상황이지만 어떠한 시기보다도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다양성을 계속해서 확보해 나가고 있다.
초기의 인류는 인류만으로는 다양성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그러나 인류가 번창할 수록 인류 자체의 다양성 만으로도 요구되는 최소한의 다양성을 만족하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20세기까진 그렇지 못했을 수 있다.
인간 다양성의 폭발은 20세기~21세기초를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변했으니까.
지역별로 너무 다른 상태에서 세계적으로 작게나마 소통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곳의 피와 지구 반대편의 피가 섞이기도 하고, 다양한 지형과 지물로 나뉘었던 지역들이 섞이면서 전에 없던 혼혈들이 태어나고.
여러 지역의 문화가 섞여서 새로운 아종 문화를 만들어 낸다.
때로는 많은 지역의 공감을 얻는 문화도 이런 과정에서 탄생한다.
그리고 인류는 반드시 우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당장이야 여건상 안되지만.
우주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나아가길 거부하는 순간 인류는 멸종의 길로 접어들 것이다. 다음 세대는 어쩌면 양자컴퓨터를 기반한 기계생명체가 주류를 이룰지도 모른다.
터미네이터라는 영화와 같은 기계 문명이 남고 생체 문명은 멸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류가 다양성 확보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이 배양기와 같은 우주는 인류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이 우주가 우연히 생겼다고 생각하는 것보단 무언가 '신' 혹은 어떠한 '절대자' 또는 카다셰프 척도 6정도의 문명이 낳앗다고 하는게 더 이상적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런 절대적인 존재들이 어째서 '다양성'을 추구할까?
그건 아직 확언하긴 힘들지만.
다양성을 가진 수 많은 우주가 있음으로 어떤 절대적 존재는 이득을 취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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